사실 저는 강원도를 한 30번은 가본 것 같아요. 그런데도 매년 여름이 되면 또 가고 싶어지는 거, 이상하죠. 올해는 좀 다르게 가보자 싶어서, 작년에 우연히 알게 된 동네 어르신들 추천 코스랑 제가 몇 번씩 가본 한적한 장소들만 모아서 2박 3일 일정을 짰어요. 결론부터 말하면, 정선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펑펑 울 뻔했어요. 너무 좋아서요.
첫째 날, 양양 말고 양양 뒷동네
다들 양양 가면 서피비치, 죽도해변 이런 데 가시잖아요. 저도 예전엔 그랬어요. 근데 7월 둘째 주 토요일에 죽도해변 가보신 분? 사람 반, 모래 반이에요.
그래서 이번엔 양양에서 차로 15분 정도 더 들어간 남애항 근처 작은 해변으로 갔어요. 정확한 이름은… 사실 저도 잘 모르겠는데, 남애3리 마을 안쪽으로 쭉 들어가다 보면 작은 방파제 옆에 손바닥만 한 모래사장이 나와요. 그날 거기 있던 사람, 저 포함해서 일곱 명이었어요. 물도 맑고, 무엇보다 조용했어요. 파도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 게 얼마 만이었는지.

점심은 근처에서 물회 한 그릇 먹었는데 28,000원이었어요. 비싸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광어가 진짜 두툼했어요. 양념도 안 달고. 혹시 양양 가시면 큰 식당보다는 항구 끝쪽 작은 가게들 한번 들여다보세요.
저녁엔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맥주 사들고 바닷가 앉아서 마셨어요. 별거 아닌데, 이게 진짜 휴가구나 싶더라고요. 여러분도 그런 순간 있으시죠? 거창한 거 없이 그냥 좋은 순간.
둘째 날, 정선의 산 속에서 길을 잃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정선으로 넘어갔어요. 양양에서 정선까지 차로 두 시간 반쯤? 내비가 자꾸 이상한 길로 안내해서 좀 헤맸어요.
정선 하면 보통 레일바이크나 아라리촌 가시잖아요. 저는 이번에 덕산기 계곡을 목표로 갔어요. 여기 진짜… 뭐랄까, 사람이 거의 없어요. 계곡 입구에 차 세우고 한 20분 걸어 들어가면 물이 진짜 시릴 정도로 차가운 구간이 나오는데, 발만 담그고 있어도 더위가 싹 가셔요. 8월에 가도 10분 이상 못 담글 거예요. 진심으로.

근처에서 만난 어르신이 그러시더라고요. “여기 옛날엔 사람 더 없었어.” 그 말이 좀 웃겼어요. 지금도 충분히 없는데.
점심은 정선 읍내로 나와서 곤드레밥 먹었어요. 가게 이름은 일부러 안 적을게요. 다음에 갔을 때 줄 서있으면 좀 슬플 것 같아서요.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솔직한 마음이에요.)

오후엔 화암동굴 갔는데, 여기는 좀 알려진 곳이긴 한데 의외로 평일엔 한산해요. 동굴 안 온도가 14도 정도라서, 밖에서 땀 줄줄 흘리다가 들어가면 천국이에요. 다만 동굴 안 계단이 좀 많아서, 무릎 안 좋으신 분들은 좀 힘드실 수도 있어요.
셋째 날, 평창에서 그냥 멍 때리기
마지막 날은 욕심 안 부렸어요. 평창 쪽으로 넘어가서 육백마지기에 갔어요. 청옥산 정상 근처인데, 차로 거의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길이 좀 험해서 SUV 아니면 살짝 걱정되긴 하는데, 천천히 가면 괜찮아요.

올라가서 본 풍경은… 사진으로는 진짜 안 담겨요. 풍력발전기 돌아가는 소리랑 바람 소리만 들리고, 발 아래로는 구름이 깔려 있고. 7월인데 거기는 긴팔 입어야 했어요. 22도 정도였나. 저는 돗자리 깔고 두 시간 누워있었어요. 그냥 누워만 있었어요. 책도 안 읽고, 핸드폰도 안 보고.
요즘 우리 너무 뭘 많이 하려고 하잖아요. 여행 가서도 일정 빡빡하게. 근데 그날 두 시간이 이번 여행에서 제일 좋았어요. 이상하죠.
내려오는 길에 평창 시내에서 메밀전병이랑 막국수 먹고, 그렇게 돌아왔어요. 차 막혀서 집에 새벽 1시에 도착했지만, 후회는 없었어요.
다녀와서 드는 생각
제 경험으로는요, 강원도 여름 여행은 유명한 곳 한두 군데랑 안 알려진 곳 두세 군데를 섞는 게 제일 좋아요. 다 숨은 명소만 가면 좀 심심하고, 다 유명한 곳만 가면 지쳐서 돌아와요.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의견인데, 7월 말~8월 초 성수기보다는 7월 둘째 주나 8월 셋째 주 이후를 노려보세요. 숙소 값도 다르고, 사람 수도 진짜 달라요. 작년 8월 5일에 갔던 속초랑, 올해 7월 둘째 주 양양은 같은 강원도가 아니었어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혹시 이 글 보고 한 군데라도 가보고 싶어지셨다면, 저는 그걸로 만족해요. 다녀오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진심으로 궁금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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