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가을, 코엑스 로봇 전시회에 갔다가 사람 모양 로봇이 커피를 내려주는 부스 앞에 줄을 섰습니다. 앞에 세 명. 별거 아니겠지 싶었죠.
그런데 제 차례까지 4분 12초가 걸렸습니다. 시계를 본 이유가 있어요. 로봇이 컵을 집으려다 두 번이나 놓쳤거든요. 옆에 서 있던 직원분이 웃으면서 그러시더군요. “얘가 투명한 컵을 잘 못 봐요.” 그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투명한 컵을 못 본다니.
솔직히 그날 이후로 휴머노이드 로봇 뉴스를 보는 눈이 좀 달라졌습니다. 화려한 시연 영상 말고, “그래서 저 손이 뭘 집을 수 있나”부터 봅니다.
핵심만 먼저
제가 본 걸 압축하면 이렇습니다.
– 걷기는 거의 풀렸습니다. 계단, 경사, 밀쳐도 버티기까지요. 예전 재난로봇 경진대회 영상에서 문 앞에 걸려 넘어지던 그 로봇들이 아닙니다.

– 손이 남았습니다. 물컵, 수건, 비닐봉지처럼 모양이 변하거나 투명한 물건을 집는 게 제일 어렵습니다. 제가 겪은 4분 12초의 정체가 바로 이거였고요.
– 먼저 오는 곳은 집이 아니라 공장, 물류창고입니다. 사람 손이 부족하고, 실패해도 사람이 다치지 않고,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곳부터입니다. 가정용은 그다음이에요.
– 가격은 아직 가전이 아니라 자동차 쪽에 가깝습니다. 부스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대당 값이 승용차 한 대에서 몇 대 값 사이였어요. 냉장고 값까지 내려와야 우리 집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니까 “내년에 집에 로봇 한 대”는 아직 아닙니다. 다만 “몇 년 뒤 요양병원에서 마주칠 확률”은 꽤 높다고 봅니다.
왜 하필 사람 모양으로 만들까요? 바퀴가 더 싼데
이 질문, 사실 저도 오래 품고 있었습니다. 로봇청소기는 원반이고, 물류로봇은 바퀴 달린 상자예요. 훨씬 싸고 안 넘어집니다. 근데 왜 굳이 두 다리로 걷는 비싼 물건을 만들까요.

답은 로봇이 아니라 우리 집에 있더군요. 계단, 문턱, 손잡이, 싱크대 높이, 냉장고 문. 이 세상은 전부 사람 몸에 맞춰 지어져 있습니다. 로봇을 사람 모양으로 만들면 세상을 다시 안 지어도 됩니다. 바퀴 로봇을 집에 들이려면 문턱부터 없애야 하잖아요.
물류창고 이야기가 좋은 예입니다. 창고를 처음부터 로봇용으로 지으면 바퀴 로봇이 훨씬 효율적입니다. 그런데 이미 있는 오래된 창고에 로봇을 넣어야 한다면요? 사람 모양이 답입니다. 사람이 쓰던 사다리, 사람이 쓰던 통로를 그대로 쓰니까요.
여러분 집에도 그런 문턱 있으신가요? 저희 집 화장실 문턱은 3cm쯤 됩니다. 로봇청소기가 몇 년째 못 넘고 있어요. 사람은 그냥 넘어가는데 말이죠.
4분 12초 동안 로봇 안에서 일어난 일

그 커피 로봇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 볼게요. 컵 하나 집는 데 왜 그렇게 오래 걸릴까요.
로봇은 카메라로 봅니다. 그런데 투명한 컵은 카메라 입장에서 그냥 “뒤쪽 배경”으로 보여요. 유리를 통과해서 뒤가 비치니까요. 사람은 반사되는 빛이랑 테두리 그림자로 “아, 여기 컵이 있네” 하고 순식간에 알아챕니다. 로봇은 그걸 따로 배웠어야 합니다.
그리고 집는 힘 조절도 문제입니다. 너무 약하면 놓치고, 너무 세면 깨집니다. 종이컵이면 찌그러지고요. 사람은 손끝 감각으로 실시간 조절하는데, 이걸 로봇 손가락에 넣으려면 촉각 센서가 필요합니다. 손가락 하나에 센서 여러 개를 박고 그걸 다 계산하는 게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군요.
직원분이 그러셨습니다. “걷는 건 이제 안 넘어져요. 근데 라면 봉지 뜯는 건 아직 못 해요.” 저는 이 한 문장이 지금 휴머노이드 로봇의 위치를 제일 정확하게 설명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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